본체만채! [1346435]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4-12-13 21: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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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능 이야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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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올해 공부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글로 남겨보고 싶고, 이런 글을 읽었을 때 혹시나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남겨봅니다.


 22년 11월, 처음으로 제대로 준비한 수능을 쳤던 저는 한 번만에 의대성적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한 번 더를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아직 완벽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치뤘고, 한 번 더 시험을 쳤을 때 더 잘 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대학을 다녀보고 생각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두 달을 보냈습니다. 별 의미 없는 음주가무에 매달려있고,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수능을 한 번 더 칠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제 모습을 보며 더 이상은 안되겠다 생각하여 5월에 무작정 짐을 싸서 대치동으로 올라갔습니다.


 24년 수능은 제가 매우 공을 들여 준비했던 시험이였습니다. 특히 이전까지는 감으로 푸는 것 같았던 국어 실력에 확신이 생겼고, 올라가는 표점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서 선택했던 과탐 투과목 실력이 금방 느는 것을 보며 올해는 정말 잘 갈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학원 빌보드에 9, 10, 11월에 찍힌 등수는 5등, 20등, 3등. 자신감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습니다. 수능 전 날 두려움이 아닌 설레임을 안고서 자리에 누웠던 그때의 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작년 수능은 정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가채점 결과 나왔던 점수는 83 89 1 50 50. 9모에서 전과목 1문항을 틀렸던 저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점수였습니다. 수능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 생각하고, 다시는 수능에 눈을 돌리지 않고 복학해서 잘 살아보자고 생각했었습니다. 점수에 대한 자책감과, 비싼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내주고 학사에서 재워주셨던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막상 성적을 받아 보니 83점인줄 알았던 국어 점수가 95점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채점을 잘못했던 것이죠. 저의 수학 점수는 여전히 보잘것 없었지만, 국어의 영향력이 매우 강력했던 24학년도 수능에서 제가 받은 점수는 인서울 의대를 가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비로소 안심을 했던 그 때, 가채점 결과를 보고 응시하러 갔던 논술 시험에 합격하면서 정시로 갈 수 있는 대학보다 더 낮은 대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였습니다.


 그러고서 3월까지 긴 시간동안 참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나는 분명히 최선을 다했고, 과정엔 전혀 후회가 없는데 결과는 원하던 것과 많이 다르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저와 일 년 내내 함께 했던 친구가 서울대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모습을 보며, 옆에서 박수를 쳐주고 웃어주며 축하의 말을 보냈지만 참 우습게도 제 마음까지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왔기 때문에 주변에 내가 너무 아쉽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슬프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없더라고요. 이런 일이 있다 보니 제가 지나온 삶들에 대해서 성찰을 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착한 일을 하면 사회에도, 또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작년 이맘때 칼럼 작성과 문제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제 꿈은 교사였기에, (실제로 제 첫 대학은 서울대학교 생물교육과입니다.) 쏟아지는 학생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것이 참 행복했고, 수능을 공부할 때와는 다른 좋은 감정들을 많이 느꼈습니다. 제 칼럼을 읽고서 도움이 되었다는 답변이나, 마음이 담긴 답신들을 받을 때는 벅찬 감정들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모의고사의 배포가 성공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사하다는,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평가들을 볼 때는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였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의 무너졌던 자존감들이 참 많이 회복되었고,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어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4월에, 정부의 정책에 의하여 불가항력적인 일이 발생하였고 학교를 가지 않게 된 저는 이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두 달 정도는 집 주변의 하천에 산책을 다니고, 진행하고 있던 과외를 계속 하면서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이 사회에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는 맹목적으로 의사가 아닌 의대생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해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게 되었습니다. 성찰 끝에, 내가 미래에 가지게 될 직업을 의사로 국한시키지 말고, 20대, 30대에는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쌓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부산이 아닌, 서울이라는 넓은 세상에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024년 4월, 저는 저의 마지막 도전을 시작하였습니다. 


 부모님께 더이상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기에, 올 한 해는 제가 번 과외비로 컨텐츠를 구입하며 공부하였습니다.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수능 5일 전까지도 과외를 진행하며 부독한 용돈을 충당하였습니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며 수능을 준비하다 보니, 저의 100%를 공부에 쏟지는 못했지만, 지방 독재학원이라는 제한적인 환경 속에서 제 나름의 최선은 다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모의고사 성적은 계속 잘 나왔습니다. 그러나 자만하지 않으려고,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번 뼈아픈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실패할 용기를 가지고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수능 전 날 밤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초탈한 마음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품고서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결론적으로 매우 높은 대학은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두 번 다시 제 인생에 수능은 없을겁니다. 

 

 올해 수능을 준비하며 제가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실패할 용기”입니다. 24학년도 수능을 치기 전까지 저는 화양연화와 같은 삶을 누려왔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은 다 이루어진다는 자신감, 어쩌면 과한 자존감을 가지고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24수능에서 원하는 결과를 못 얻었을 때 너무나 큰 좌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패에 대한 좌절감은 또 다른 도전을 통해 오래 지나지 않아 사러지더군요. 무엇이 됐건, 실패할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일에 계속 도전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의 실패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다가올 나의 성공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줄 새벽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아직 하고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긴 부담스러울 정도로, 너무나 큰 꿈을 가지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대학에 가게 되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컴퓨터 공학이나 법에 대해서도 공부해보고 싶고, 국회나 연구실처럼 제가 접해보지 않았던 여러 장소들에서 인턴 활동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한 그런 와중에도 많은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아가고 싶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냐겠다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시련을, 또 얼마나 많은 실패를 만나게 될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보려 합니다. 30년 뒤에 제가 이 글을 다시 보았을 때, 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자 합니다.


 일기장이 되어버렸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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