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피해의 인과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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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750조에서 규정하는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①고의나 과실로 말미암은 위법행위가 있어야 하고, ②손해가 발생하여야 하며, ③그 위법 행위로 인해 손해가 생겼다는 이른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은 일반적으로 원고인 피해자가 부담하여야 하는데, 이를 '과실책임의 원칙'이라 한다. 이때 이러한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곤란하거나 혹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문제된다. 가령 산업재해 또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이에 해당한다.
과거 어느 공해 소송에서 어민들은 공장의 폐수 방류 때문에 양식 중이던 김이 폐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폐수의 방류로 인해 김이 폐사하였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방류된 폐수가 해류를 타고 양식장에 도달하였으며, ㉡그 폐수 안에 김의 생육에 악영향을 미치는 오염 물질이 들어 있었고, ㉢그 오염 물질의 농도가 안전 범위를 넘었다는 것을 모두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대법원은 ㉠만 증명하면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고 인정하였다. 이는 피해자인 어민들이 원고로서 겪게 되는 입증의 어려움을 완화시켜 주려 한 것이다. 현재의 자연과학적 수준으로도 정확히 규명할 수 없는 부분이 도처에 많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개인인 피해자에게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간의 이러한 사실적 인과관계를 하나하나 엄밀하게 증명하도록 요구한다면, 이는 환경오염피해의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거부하는 것이 되어 사회국가원리의 실현이라는 헌법적 요청에도 반(反)하게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판례의 흐름 속에서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 도입되어 시행되면서 환경오염피해의 인과관계 추정에 관한 명문적 규정이 도입되었다. 이는 환경오염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입증부담을 경감하는 등 실효적인 피해구제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환경오염피해로부터 신속하고 공정하게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환경오염피해구제법 제9조 제1항은 "시설이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시설로 인하여 환경오염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정하고 있으며, 제2항에서는 "제1항에 따른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지의 여부는 시설의 가동과정, 사용된 설비, 투입되거나 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기상조건, 피해발생의 시간과 장소, 피해의 양상과 그 밖에 피해발생에 영향을 준 사정 등을 고려하여 판단한다."라고 정함으로써, 명시적으로 시설과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인과관계에 대한 피해자의 입증부담을 완화하는 규정을 두었다.
대법원은 이러한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관련 규정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환경오염피해에 대하여 시설의 사업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경우, 피해자가 여러 간접사실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보아 시설의 설치·운영과 관련하여 배출된 오염물질 등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및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그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이때 '피해의 발생' 역시 추정하고 있으므로, 종래 판례가 인과관계의 추정을 위하여 요구하던 ㉠과 같은 '오염물질이 피해자에게 도달하여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직접 증명될 필요조차 없다고 판시하였다.
(대판 2023. 12. 28. 2019다300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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