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1) 시는 해석하려고 하지 마라
게시글 주소: https://ebsi.orbi.kr/00041234556
시는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우선 느껴라.
느낌은 대체로 모호하고 달콤하고 어딘가 아쉽고, 또 꺼림직하다.
프랑스의 학자 Gaston Bachelard의 말이고, 한국 문학계에는 김현 교수님을 통해 많이 전파되었습니다.
수능 문학을 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1. 일단 전반적인 '느낌'을 얻고,
2. 주요 시어들의 관계를 파악한 뒤,
3. 선지를 읽으면서 정오를 판단하면 됩니다.
수능에 나오는 현대시들은, 쉽게 쓰여서 해석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일단 분위기를 느낍시다.
화자가 어떤 대상 혹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판단하는지/부정적으로 판단하는지 먼저 봅시다.
기출 지문들을 조금 볼까요?
한 줄의 시(詩)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詩人)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묘비명(墓碑銘)」-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인이 '묘비'에 대해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은근히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문제에 대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한강물 얼고, 눈이 내린 날
강물에 붙들린 배들을 구경하러 나갔다.
훈련받나봐, 아니야 발등까지 딱딱하게 얼었대.
우리는 강물 위에 서서 일렬로 늘어선 배들을
비웃느라 시시덕거렸다.
한강물 흐르지 못해 눈이 덮은 날
강물 위로 빙그르르, 빙그르르.
웃음을 참지 못해 나뒹굴며, 우리는
보았다. 얼어붙은 하늘 사이로 붙박힌 말들을.
언 강물과 언 하늘이 맞붙은 사이로
저어가지 못하는 배들이 나란히
날아가지 못하는 말들이 나란히
숨죽이고 있는 것을 비웃으며, 우리는
빙그르르. 올 겨울 몹시 춥고 얼음이 꽝꽝꽝 얼고.
-김혜순, 「한강물 얼고, 눈이 내린 날」-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그런데 위의 시 같은 경우에는 해석이 어려울 뿐 아니라 느낌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경우, 평가원은 개념들 간의 관계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요소를 출제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선지) ② ‘아니야’는 배가 훈련을 받고 있다는 추측을 부정하는 표현으로, 배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배의 내부적 원인에서 기인하고 있음이 이를 통해 드러난다.
배가 움직일 수 없는 것은 강이 얼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배의 내부적 원인(배가 고장났다거나, 배에 구멍이 뚫렸다거나)이 아니라, 외부적 원인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것이죠.
시를 이해를 못해도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강이 얼었음->강이 흐르지 못함->배가 저어가지 못함)가 있으면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느낌이 안 오면, 개념들 간의 관계를 파악하면 됩니다.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주름 잡히는 연륜마저 끊어버리고
나도 또한 불꽃처럼 열렬히 살리라
-김기림, 「연륜」- (2022학년도 6월 모의평가)
(적절하지 않은 선지) ② (가)에서 ‘불꽃’을 긍정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주름 잡히는 연륜’에 결핍되어 있는 속성을 끊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한 것이겠군.
시에서는 '연륜을 끊고' -> '불꽃처럼 열렬히 삶'을 얘기합니다.
'연륜을 끊음'이라는 행위가 '불꽃처럼 열렬히 삶'의 수단인 것이죠.
따라서, 수단과 목적, 선후관계가 뒤바뀌었으므로 2번 선지는 옳지 않습니다.
굉장히 객관적이죠??
보통, 수능에서는 현대시가 쉬울수록 내용 이해를 더 물어보고
현대시가 어려울수록 이해보다는 '객관적인 사실 판단'을 더 요구합니다.
쉬운 경우에는 '느낌'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어려운 경우에는 '관계 파악'의 중요성이 더 커지는 것이죠.
요즘 각잡고 제대로 된 칼럼 쓸 시간이 안 되어서, 이렇게 짧게 짧게 메모처럼 자주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만점의 생각 비문학편 저자
피램 문학 시리즈 공동 저자
조경민입니다.
감사합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예지몽 아니겠지 0
수능 보는 꿈 꿨는데 국어시간에 집중이 하나도 안됨 독서 언매 몇문제 넘기면서...
-
가채점표 포기 0
올해는 시간 부족할 것 같아서 스킵 어차피 면접, 논술 쓰지도 않아서
-
진짜 ㅈㄴ 불편해 보이는데
-
제가 너무 빨리 보는 것도 같은데...긴장되어서 넘기면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일단...
-
아 손에 종이 베임 13
아야 피 철철 남..
-
독-1개 문-5개 문학 진짜 죽이고싶네
-
오늘 점심 6
포켓먼빵
-
어려운거 맞나요? 라이프니츠 나오고 일원론 이원론 충전기 고전시가에서 개 나오는 그...
-
올해는 공부 유기해서 현역수능보다 못 볼 각인데 왜떨림?
-
ㅆㅂㅅㅂㅅㅂ 마지막 회차에서 드디어 커하로 95를 뚫음
-
프사 냅다바꾸기 4
켄카네키 오레키호타로 오카룽 레츠고
-
괜찮은가요 ??
-
생명1 검더텅 1회독 수특수완한번씩 풀엇고 비유전은 ㄱㅊ긴한데 그래도 기출 한 번...
-
모의고사 국어 백분위 94-96 수학 백분위 94-96 영어 3-4등급(가끔 턱걸이...
-
아예 없나...작년에 저격먹었으니
-
오늘이 벌써 2
수능 전 마지막 주말이다 오르비언들 올해 다같이 수능 존나 부시고오자
-
본인 그래서 예전에 심지어 화1 서바도 번개장터에서 현강러한테 원본 택배 받아서 풂...
-
수능이 4일 남았다는건 15
07이 현역 되기까지도 4일 남았다는것 시간 왤케빠름
-
서바 17회 쉬웠던 것 같은데 88..
-
정당이 구성원의 이익보다 공익 중시해요??
-
굉장히 빡빡함
-
https://orbi.kr/00069395759/%5B%EC%A0%95%EC%B9%...
-
방금 서바 27회 풀었는데 72떠서 멘탈 개나감
-
지구 화석 0
현생누대에서 살던 생물 중에 여태까지 살아있는게 식물들 말고 또 뭐가 있어요?...
-
오리비티콘 이거 19
꽃다발인줄 알았는데 심장이였음..
-
햇살도맞아주니 기분이한결나아져요
-
후하후하
-
수특 연계라 엄청 쉽게 풀었는데 다들 어렵다고 하네요 저만 가 나 14번이랑 법지문...
-
강이분 독서3 내용 읽어보기만하고 수특 문제는 풀지 말까요? 시간이 얼마 없네요.
-
마지막 수능 때 밖에서 피다가 지나가던 감독관한테 개닦여서 멘탈나감
-
대체 이 시기에 뭘 필기하길래 삼색볼펜딸칵을 2초에 한번씩하냐 아진짜로
-
(본문 독해 전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안녕하세요 :) 디올러 S (디올...
-
지금 ㅈㄴ 자살머려움
-
강k 국어 1
강k 국어 10회 혹시 질문 답변 가능하신 분 계신가요? 풀땐 그냥 평소처럼 푼줄...
-
히나만 풀겠어요
-
애미가 없노 0
ㅅㅂ
-
러셀 손우혁쌤 0
러셀 손우혁쌤 많이 어려우신가요???.. 지금 고2인데 고2 10모 백분위...
-
문제를 쉽게 줘서 망정이지 이걸로 어렵게 내면 ㄷㄷ
-
이시기 쯤 2
보통 뭐하세요?? 매일 실모 할당치 풀고 휴식 이러면되나여 국어연계나 더 읽을까...
-
매년 수험생의 행동패턴이 달라지지 않아
-
화작입니다
-
유빈 4
트리플에스 공유빈
-
이 그림은 시험실 감독관이 들고 오는 문제지 봉투에도 인쇄되어 있음. 한 시험실에...
-
1컷 50감?ㅋㅋㅋㅋㅋㅋㅋ
-
국어 수학 영어 한지 세지 56 76. 2. 50. 50 인데 이거 그대로 수능까지...
-
생윤황들 주목 2
롤스가 시불의 대상에서 세제법도 포함시키나요?? 테일러가 모든유기체들은 상호책임을...
-
인+동인가요 아니면 인간만인가요
-
그리고 문학의 정보 경중이 보이시나요 이건 중요하고 이건 세부정보다 이게 파악이되서...
-
아니 ㅅㅂ 5
설맞이 2-2 풀었는데 잇올에서 답지를 시즌 1걸 가져와서 못매기네 와 진짜 병신인가
-
올해 다시 회귀한다고 하는 거 봐서 높으신 분들이 좀 관심이 떨어지셨나 이러다가...
요즘 특히 객관적인걸 많이 물어보더니 올 수능에선 사소한 디테일까지 엄청 묻더라구요••
시는 느껴라..메..모...
이거 원툴로 현대시에서 살아남앗습니다
개꿀팁임 ㄹㅇ루 ㅠ
만점의 생각 문학편 나오면 사야겠다
더 이상 수능 안 칠 것 같긴한데
비문학편이 너무 인상깊었어서.. 비록 수능은 못봤지만 ㅋㅋ
분위기(느낌)+사실 일치
시를 넘어서 수능 문학 전체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좋은글이네용
여기에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시의 전반적인 느낌도 자기 멋대로 얻지 말고 상식적인 선, 내신으로 쌓아온 베이스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의, 또 동의합니다. 만점의 생각 문학편이 너무 기대되네요..
구구절절 다 맞는말같아요!
문학은 객관적 사실과 문맥 두개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객관적으로 변별해야하는 수능시험이라
ㄹㅇ 그런거같아요
그래도 문학은 정형에서 크게 안벗어나서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