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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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
2001년 어느 증권회사 광고의 카피라이터입니다.
당시 이 광고는 무의식적으로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며 살던 당시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광고에서 모두의 ‘예’를 여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론이란 ‘특정 사안에 대해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견해’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원전폐기정책에 대하여,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하여,
최저임금인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남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현대 민주주의사회에서 여론이 갖는 힘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합니다. 여론은 민주주의의 주요한 의사결정방식인 다수결과 결합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여론은 중요쟁점에 대해 민주적 숙의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고, 집단적 지성의 창출수단 혹은 매개체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여론은 결국 투표로 이어져 기존 정권을 유지시키거나 새로운 정권을 창출합니다. 때문에 정당들은 항상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다수의 힘에 의해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낸 여러 차례의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군부독재를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루어낸 경험,
2002 한일 월드컵의 거리응원,
그리고 최근의 촛불혁명까지.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여론에 대하여 너무나도 관대하고,
여론을 한없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론은 집단지성을 신봉하는 자들이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는 것과 달리 항상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첫째, 여론은 그 개념적 정의와 달리 ‘다수의 의견’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여론은 민주적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에 자신들의 행위에 민주적 권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특정집단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드루킹 사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정집단이 여론이라고 규정한 것을 우리는 여론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앞서 제가 물어보았던 원전폐기정책, 수사권독립, 최저임금인상에 관하여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견해가 과연 순수한 여러분의 견해인가요.
둘째, 여론은 지나치게 감정적입니다. 우리는 인터넷 상에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가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행동을 고발하는 글을 쓰면, 이를 보고 분노한 네티즌들이 사건의 진위여부를 따지지 않은 채 ‘마녀사냥’을 하고, 후에 이것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의 일방적 주장이었거나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이가 오히려 가해자였던 경우를 심심찮게 경험했습니다. 다수가 냉정을 찾은 이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였고, 이는 다수의 힘으로 자행된 집단적 원한감정의 해소과정이었기에 다수에 속했던 개인들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며 책임을 면하곤 했습니다.
특정인에 대한 구속영장청구가 기각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인터넷 뉴스 댓글을 확인해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사를 구속시켜야 한다.’, ‘사법부가 한통속이다.’등의 지나치게 감정적인 댓글들이 종종 보입니다.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가나, 우리 형사소송법에서는 불구속수사를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과연 구속수사를 해야 할 만한 예외적 상황인가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 확실하다고 해도 구속사유가 없으면 구속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논리대로 다수가 분개할만한 사건을 저질렀다고 의심되는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구속시켜버린다고 하면 이것은 오랜 기간을 통해 확립한 법치주의의 전통을 버리고 고전적, 다수의 민중이 원하는 바대로 정치체계를 재편해버리는 원시적 형태의 도편추방제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셋째, 여론은 전문적 지식이 부족하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답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 답을 추구하려 하지 않고 다수결에 의한 판단을 내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자주 사용되는 너무나도 멋진 ‘집단지성’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여론’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요. 앞서 살펴본 구속수사의 사례를 다시 가져와 본다면, 뉴스에 의해서 피상적인 정보의 일부분만을 전달받아서 사건을 대충 알고 있는 대중들이 내린 구속의 필요성에 대한 판단이 과연 다년간의 법조경력을 바탕으로 범죄소명자료와 피의자에 대한 심문을 통해 판단을 내린 판사의 판단보다 더 정확한 것일까요.
저는 방송인 A씨를 싫어합니다. 언제부턴가 그는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같은 말을 하면 그들로부터 큰 박수와 지지를 받으며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음을 경험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그전까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던 그에게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그에게는 꽤나 짜릿한 경험이었나 봅니다. 그 이후로부터 그는 계속 방송을 통해 실속 없고 알맹이는 없지만 멋있어 보이는 이야기, 듣는 이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듣는 이들의 입장 혹은 이익만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하며 대중적 수요에 영합해왔고, 자신을 현대사회에서의 ‘오피니언 리더’로 잘 포장시켰습니다. 저는 이러한 눈에 보이는 뻔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이의 모습에 할 말을 잃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다수에 대한 동조와 편승을 통한 여론의 확대 및 재생산은 사회적 효용성이 크지 않아 보입니다. 욕을 먹더라도 다수가 놓치고 있는 점을 지적해야 특정 쟁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토론을 통해 더 발전적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인 A씨에 대한 부정적 서술이 꽤 길게 이어졌지만, 저는 이것이 비단 A씨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비판할 때에 자신 또한 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 또한 A씨일 수 있고, 여러분도 A씨가 될 수 있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여론이 갖는 커다란 힘에 대해서 다시 서술하는 것은 글의 피로도를 높일 수 있기에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만한 이론을 하나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침묵의 나선’이론입니다.
‘침묵의 나선이론’이란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다수의 의견과 동일하면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만 소수의 의견일 경우에는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침묵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여론의 형성 과정이 한 방향으로 쏠리는 모습이 마치 나선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주류에 속하고 싶은 인간의 강한 욕망이 침묵의 나선을 만든다고 합니다.
우리사회는 다수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지를 않기를 요구하는 ‘눈치사회’라고 할 수 있기에 이 이론은 우리사회에 아주 잘 부합합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다수의 선호와는 다른 자신의 선호를 다수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포기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다수의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함에도 정신적 고독과 비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입을 닫은 경험도 있을 것이고요.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을 알고 있나요. 단일한 감자종을 통해 아일랜드의 식량난을 해결하려했지만, 그 감자종의 병충해는 아일랜드를 죽음의 땅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이와 같이 여론이라고 하는 단일한 감자종에 대한 추구는 우리사회를 여론으로 규정된 견해만이 확대, 재생산되고,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집단 지성’ 그리고 ‘여론’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멋있기만 한가요.
여론의 부정적 측면을 발견했을 때,
여러분은 예전처럼 다시 침묵할까요.
아니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P.S
여론이 갖는 긍정적 힘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적 측면도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여론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탐구가 극단적인 엘리트주의적 사고관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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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측면만 보이는데 굳이 긍정적 측면을 보려 노력하고 싶지는 않아요
요새 특히나 부정적 측면이 강조되나 봅니다.^^
어떠한 일때문에 쓰신 글인지는 몰라도
정말 공감되는 글이네요
집단지성은 개인의 주체적인, 조금은 반사회적 생각이 모여야 비로소 의미가 있고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게 된다 생각하는데
요즘은 그저 사회적 흐름에 올라타 여론이 절대적선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것 같아요
공감이란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분위기에 따라 일어난 부정적현상이 아닐까라 저는 생각해요..
그치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건 매우 꺼려지죠...
자칫하면 글에 적으신대로 극단적 엘리트주의자와 같은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니까요..ㅠ
최근 주목받는 조던피터슨교수의 견해와
조금 비슷한것같네요 저도 이러한 생각에 매우 동감해요
별 계기는 없고 시간 날 때 오르비에 글 조금씩 남겨두려고 주제 선정하다가 글 남기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보네요.^^
a씨 너무 궁금한데 힌트좀 주세용...
힌트를 주었다가는 댓글이 본문과 결합하여 특정인을 지칭하게 되어 명예훼손죄의 성립요건인 특정성을 충족하게 되어 힌트를 드릴 수 없습니다. ㅠㅠ
아앗....변호사의 철저함..!
혹시 왜 아직 연대편안나오나요 ㅠㅠ 저번주부터 나온다하셨는데
예판 시작되지 않았나요? 오늘 맛보기 페이지까지 선정했는데 ^^
아 오늘시작했나보네여 어제새벽까지 없었는데 암튼 예판구매하겠습니다 연대편도 기본편이랑 표지똑같나요?
네 색깔만 바꼈습니다. ^^
https://atom.ac/books/5416-%EC%8A%AC%EB%A6%BC%ED%95%9C+%EB%85%BC%EC%88%A0/
연세대, 중앙대, 성균관대까지 예판중입니다!
저는 개인 차원에서는 현명할 수 있으나 그게
집단지성 수준의 거대집단이 되면 멍청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어느때보다도 남들과 연결된 지금에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집단 속에 숨어서 개인적 차원의 책임감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죠^^
구속연장...ㅋㅋ 공감함
^^ 그렇죠? 다 구속 시키자고 하시니..
공감합니다. 글 잘쓰시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많이 쓰도록 하겠습니다.
따ㅡ봉
팔로우하겠습니다.
뭐든지 중용이 필요한가 봅니다.
여론이 없다면 칠흙같이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야 할 것이고,
여론이 과하면 내리쬐는 태양에 눈일 멀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 '중도'의 길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에게 관심이 가더군요.
색이 없다, 강점이 없다는 비판들이 있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강점인것 같습니다.
색이 약해서 색에 의존하는 정치를 하지 않아도 되고,
강점이 없지만 반재로 약점도 없는
이 지체만으로 강점이 아닐까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몰라주는것 같습니다.
알아주기까지는 오래 걸릴 겁니다. 현실 정치의 벽은 높으니까요. ^^
김제동?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막짤 본인이신가용??
99.9 형사전문변호사라는 드라마의 마츠모토준입니다.^^
'다수의 선호와는 다른 자신의 선호를 보이지 않는 권력(여론)에 의해 포기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진짜 ㄹㅇ.. 말로는 현실과 타협한다 하지만 알면서도 부당한 일에 굴복하는 경우는 정말 수없이도 많죠 ㅜ 쓰신 장문의 글을 읽고 '선입견을 품지 마라. 다양한 계절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다양한 성향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라는 바부르 황제의 황금같은 명언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
장문의 댓글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명언 하나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펜끝님. 잘 읽어주셨다니 보람찹니다.
그럼에도 저는 굳이 시류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출하고 싶진 않습니다. 오르비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솔직한 소신을 밝히면 댓글로든 채팅으로든 소모적인 논쟁을 벌여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거든요. 커뮤니티의 거대담론과 다르면 다를수록 말이죠...
예전에는 그런 논쟁을 즐겼는데 요즘은 피곤함이 앞서네요. 그래서 지인들 외에는 그런 이야기를 잘 하려 들지는 않습니다 ㅋㅋ
저도 그렇습니다. 소모적 논쟁이 피곤해질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목소리를 내실꺼죠?
마음이 시키면 그때는 쓸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ㄱㅋㅋㅋㅋ
김제동
^^ 꼭 읽어보세요.
감자 대기근 사태 비유가 정말 와닿네요. 무조건 여론이 옳다는 전제를 깔고 판단하는 것만큼 무지하고 위험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들 많이 올려주세요 :)
건방진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특별하고 똑똑하니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데 무능한대중은 관심도 없고 멍청하다
글의 논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여론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는데 부정적 측면을 야기하는 요인은 적시한 세 가지 요인이 있다. 따라서 여론이 부정적 양상을 드러낼 때는 침묵하지말고 옳은 소리를 내라는 것이 글의 논지이기에 적절하지 않은 논의 같습니다.
멍청한 사람 많은건 팩트아님?
건방지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님이 뭔데 판단하심?
건방지시네
반대하시는 이유는 안적으셨네요.
요약정리하려고 했는데 이미 잘 돼있네
엌ㅋ
제목 보고 뭔가 싶어서 들어왔는데 글 내용이 좋네요.
그러니 공권력을 이용한 조직적인 여론조작에 흔들렸던 지난 10년을 잘 반성해야죠.
복무신조